동물병원 이름으로 상표를 출원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원장님이, 특허청에서 서류 한 통을 받았습니다. 거절이유통지. 비슷한 상표가 이미 등록돼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간판도 그 이름, 도메인도 그 이름, 단골들이 부르는 것도 그 이름인데. 이제 와서 바꿔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여기서 대부분은 두 갈래로 갑니다. 의견서를 써서 "안 비슷하다"고 다퉈보거나, 아니면 이름을 접거나. 그런데 세 번째 길이 있습니다. 이 글은 결국 그 한 가지를 말하려는 겁니다. 당신을 막은 그 상표가 정작 안 쓰는 상표라면, 다툴 게 아니라 치워버리면 됩니다.
거절이유통지에 인용된 상표, 한 번 열어보세요
거절이유통지에는 당신의 출원을 막은 선등록상표의 등록번호가 적혀 있습니다. 그 번호로 상표를 들여다보면 두 가지가 보입니다. 누가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상품·서비스에 등록돼 있는지.
실제 사례 하나.
한 동물병원 원장님의 거절이유통지에 인용된 상표는, 뜻밖에도 치과였습니다. 동물병원도 아니고 같은 업종도 아닌 치과가 왜 막았을까요.
답은 그 치과의 지정서비스에 있었습니다. 등록 당시 칸을 넓게 잡으면서 치과 진료뿐 아니라 동물병원, 수의 관련 서비스까지 적어둔 겁니다. 정작 운영은 치과만 했고요. 동물병원 서비스는 한 번도 한 적 없는데, 서류상 빈 칸만 남아 같은 이름의 동물병원을 막고 있었던 거죠.
다투는 게 아니라, 막은 상표를 없앤다
이 상황에서 의견서로 "두 상표는 비슷하지 않다"고 다투는 건 쉽지 않습니다. 이름이 같으니까요.
그래서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 치과가 동물병원 서비스를 3년 넘게 쓰지 않았다는 점을 근거로, 안 쓰던 지정서비스를 겨냥해 불사용취소심판을 청구한 겁니다.
이 절차의 핵심은 증명을 청구한 쪽이 아니라 상대가 한다는 점입니다. 치과는 자기가 동물병원을 운영했다는 증거를 내야 했고, 한 적이 없으니 낼 자료가 없었습니다. 길을 막던 부분이 취소됐고, 막은 상표가 사라지자 거절이유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원장님은 출원했던 그 이름을 그대로 등록받았습니다.
거절을 뒤집은 게 아닙니다. 거절의 이유를 없앤 거죠.
이름을 바꾸는 것보다 나은 이유
이름을 바꾸면 새 출원, 새 심사를 처음부터 다시 거칩니다. 보통 1년 가까이 걸리고요. 간판, 명함, 도메인, 그동안 쌓은 검색 노출까지 전부 다시 시작입니다. 게다가 새로 고른 이름이 또 다른 선등록에 막히지 말란 법도 없습니다.
반면 막은 상표가 안 쓰는 상표라는 게 확인되면, 그걸 치우는 비용은 그 모든 걸 다시 만드는 비용보다 훨씬 작습니다.
직접 확인하는 법
거절이유통지를 받으셨다면, 거기 적힌 인용상표 등록번호를 KIPRIS(특허정보넷)에서 검색해보세요. 그 상표를 가진 곳이 지금도 영업 중인지, 실제로 그 상표를 쓰는 흔적이 있는지. 폐업했거나, 업종이 바뀌었거나, 등록만 해두고 방치한 정황이 보인다면 — 다툴 일이 아니라 치울 수 있는 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물론 인용된 상표가 모두 죽은 상표는 아닙니다. 멀쩡히 쓰이는 상표라면 불사용취소는 기각되고, 그땐 의견서나 다른 전략으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청구 전에 실제 사용 여부부터 가립니다. 가능성이 낮으면 청구를 권하지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