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특허청에서 통지서 한 장이 옵니다. 제목은 의견제출통지서. 본문에는 거절이유라는 단어가 박혀 있고, 며칠 안에 답을 내라는 기한이 적혀 있습니다. 보통 2개월입니다.
이걸 처음 받으면 머릿속이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돈 날린 건가. 이 이름은 못 쓰는 건가. 다시 처음부터인가.
먼저 한 가지만 짚겠습니다. 의견제출통지서는 최종 거절이 아닙니다. 이런 이유로 거절될 것 같으니 할 말 있으면 하라는 중간 단계입니다. 여기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립니다.

거절을 받치고 있는 근거는 2종류
선등록상표 때문에 난 거절(상표법 제34조 제1항 제7호)은 사실 다리 두 개로 서 있습니다. 하나는 표장이 비슷하다는 것. 또 하나는 지정상품이 비슷하다는 것.
둘 다 충족돼야 거절이 섭니다. 거꾸로 말하면, 둘 중 하나만 무너뜨려도 거절은 못 섭니다.
대부분은 통지서에서 이름이 비슷하다는 문장만 보고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상품이라는 다리가 따로 있습니다. 이름이 거의 같은데도 상품이 다르면 공존해서 등록되는 경우가 실제로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심사단계에서 상품 유사로 인한 거절이유는, 유사군코드가 정합니다
상품이라는 다리를 무너뜨리는 게 상품 비유사 주장입니다. 여기서부터가 일반 검색으로는 잘 안 나오는 부분입니다.
상품이 유사한지 아닌지, 특허청은 유사군코드라는 걸로 봅니다. 쉽게 말하면 상품들을 미리 칸막이로 묶어둔 장바구니입니다. 같은 칸에 들어 있으면 유사한 상품으로 추정합니다.
여기서 흔한 오해가 둘입니다. 코드가 같으면 무조건 끝이다. 코드가 다르면 무조건 안전하다. 둘 다 정확하지 않습니다.
유사군코드는 법이 아닙니다. 심사 편의를 위한 행정 기준일 뿐, 법적 구속력이 없습니다. 법원은 코드만 보지 않습니다. 실제 거래실정, 그러니까 누가 사는 물건인지, 어디서 파는지, 용도가 무엇인지까지 종합해서 판단합니다. 그래서 이론상으로는 코드가 같아도 비유사가 가능합니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다릅니다.
같은 유사군코드에 묶여 있는데 그래도 우리 상품은 비유사라고 의견서로 심사관에게 주장하면, 잘 받아주지 않습니다. 심사관은 그 코드 시스템으로 검색하고 판단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코드가 같은데 비유사로 정말 뒤집으려면, 거절결정을 받은 뒤 특허심판원으로, 필요하면 법원까지 가야 합니다. 거래실정이 본격적으로 다뤄지는 자리가 거기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같은 코드에서 비유사로 이기는 건 논리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용과 시간의 문제입니다.
반대 경우는 희소식입니다. 인용된 상표와 내 상품의 유사군코드가 서로 다른데도 거절이 났다면, 그건 심사관이 코드를 넘어 묶은 사안입니다. 이때는 의견서 단계에서 비유사를 주장할 실익이 실제로 있습니다.
그래서 통지서를 받고 가장 먼저 할 일은, 인용상표의 지정상품과 내 지정상품의 유사군코드를 나란히 놓고 대조하는 것입니다. KIPRIS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같으냐 다르냐. 이 한 가지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바꿉니다.
같은 코드라도, 길이 막힌 건 아닙니다
코드가 같다고 끝난 게 아닙니다. 현실적인 카드가 따로 있습니다.
첫째, 지정상품을 일부 빼는 것입니다. 충돌하는 상품만 삭제하고 나머지를 살리는 방법입니다. 통지서를 받으면 출원 전체가 거절된 줄 알기 쉽지만, 실제로는 일부 상품만 걸린 경우가 많습니다. 그 상품이 사업에 핵심이 아니라면, 빼는 게 가장 빠르고 비용이 적게 드는 길일 때가 많습니다.
둘째, 심판으로 다투는 것입니다. 문제 된 그 상품이 사업의 핵심이라 도저히 못 뺀다면, 비용과 시간을 들여서라도 다툽니다. 의견서로 끝낼 일을 심판과 소송까지 끌고 가면, 들어가는 돈과 시간은 출원할 때와 자릿수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결과는 사안마다 다릅니다. 이런 경우는 무조건 이긴다고 말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셋째, 선등록권자의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상대를 설득해 동의를 받아 함께 등록하는 길도 제도적으로 열려 있습니다. 구체적인 요건과 적용 범위는 사안별로 확인이 필요합니다.
표장 자체가 다르다는 주장은 또 다른 다리라 여기서는 접어둡니다. 별도로 다룰 주제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카페를 여는 분이 상호로 상표를 냈는데, 비슷한 이름의 선등록상표가 걸려 거절이 났다고 합시다. 인용된 상표는 커피전문점업 하나인데, 이분은 커피전문점업에 더해 베이커리 제품 도매업까지 지정해 둔 상황입니다. 두 업의 유사군코드가 서로 다르다면, 적어도 베이커리 도매 부분은 의견서로 비유사를 다툴 실익이 있습니다. 반대로 둘 다 같은 커피 관련 코드 안에 있다면, 의견서로 미는 것보다 핵심이 아닌 상품을 정리하는 쪽이 현실적입니다.
그런데, 거절이유 극복했다고 강한 권리가 생긴 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비유사로 뚫든 상품을 빼든, 등록을 받아냈다고 해서 그게 곧 강한 권리는 아닙니다.
상품을 빼고 받은 등록은 그 좁아진 범위에 갇힙니다. 나중에 상대가 그쪽으로 사업을 넓히거나, 내가 빼둔 그 상품으로 사업을 확장하면 충돌이 다시 시작됩니다. 등록증을 받는 순간이 끝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물론 빨리 등록받는 게 합리적일 때도 있습니다. 비용이 빠듯하거나, 일단 등록 자체가 급한 경우. 다만 빼버린 그 상품이 사실은 사업의 중심이었다면, 좁은 등록은 분쟁을 없앤 게 아니라 미뤄둔 것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통지서를 받았을 때 던질 질문은 어떻게든 등록되느냐가 아닙니다. 지금 걸린 이 상품이 내 사업에 얼마나 핵심인가, 입니다.
저도 처음엔 등록되느냐 마느냐만 봤습니다. 분쟁과 심판 사건을 다루면서, 등록증과 실제로 행사되는 권리 사이에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다는 걸 직접 보게 됐습니다.
지금 상표거절이유통지서를 들고 있다면 대응 순서는 이렇습니다:
- KIPRIS에서 인용상표의 지정상품과 유사군코드를 확인한다.
- 내 상품의 코드와 같은지 다른지 대조한다.
- 걸린 그 상품이 사업의 핵심인지 자문한다.
이 세 가지만 정리해도, 의견서로 다툴 일인지 상품을 정리할 일인지 심판까지 볼 일인지가 보입니다. 기한이 박혀 있는 통지서지만, 방향을 정하는 데 정작 필요한 건 남은 며칠이 아니라 이 판단입니다.